일제 강제동원 매우 어린 나이 제주인(조선인)까지 적용 확인돼
“왜정시피징용자명부”일본 수교문제 협의 대일 배상청구 근거 자료...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등 여성 동원 신고 대부분 누락
구일본육해군징용선 사망자명부, 제주인 총 369명 사망기록 확인

조선인 돌무덤과 일본인 납골묘가 대조되고 있는 모습. 살아서도 죽어서도 버려진 조선인.(사진제공=고병수 기자)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파쇼 일본제국주의 만행이 제주도가 주관한 ‘일제강점기 제주인 강제동원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일본제국주의는 당시 패권을 위한 전쟁의 광분에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인 특히 제주인에 대한 만행도 그대로 드러나 이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가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전근대적인 파쇼리즘이 어린 소년.소녀를 전쟁의 도구로 삼았음에도 반성도 없는 일본에 대한 세계사적 평가는 분명하다게 사실이라는 지적이다. 

강제동원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육군의 각 부대별로 작성하는 자료로 군인·군속이 함께 기재되고 국가기록원에 소장 중인 ‘유수명부’는 패전 이후 각 부대별로 관리하던 해당 자료를 일본 후생성(厚生省)에서 인계받아 1945∼1949년 사이에 조선인 부분만 따로 빼서 재작성한 자료이다. 따라서 원본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유수명부”에 기재되어 있는 제주인 군인은 총 769명 중 512명이다. 10대도 36명이 동원되는데, 이 중 보다 어린 연령인 14∼18세의 인원이 확인되는 것은 이들이 ‘특별지원 소년병’등으로 동원되는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일제의 강제동원은 매우 어린 나이의 제주인(조선인)에게까지 적용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동남아시아, 조선, 중국, 일본 등 전선으로 뿔뿔이 흩어져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임시군인군속계”에 수록된 인원을 국가기록원은 총 4만6천164건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제주인 색인목록에는 976건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중 10대 인 13∼15세의 어린 연령대가 동원된 것도 주목된다.

이들이 투입된 부대는 자료에 기재된 부대명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수는 약 300개에 달한다.

이와 함께 “왜정시피징용자명부”는 한국 정부가 일본과 수교 문제를 협의하면서 대일 배상청구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57∼59년 사이에 노동청에서 작성·생산한 문서이다.

강제동원 실태조사보고서는 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와 같은 여성 동원에 대한 신고는 대부분 누락됐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에서는 자료에 기재된 총 인원을 28만5천771건으로 제주인 색인목록에는 총 1천583건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일본 정부로부터 제공 받은 강제동원 관련 명부자료들 중에 지난 1971년 최초로 제공된 자료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특히 구일본육해군징용선사망자명부는 일본 육해군이 징용한 선박의 선원으로 강제동원되었다가 사망한 조선인들에 대한 명부자료이다.

국가기록원이 제공한 색인목록에는 제주인 총 369명의 기록이 확인됐다.

제주 14개 읍·면 출신 약 355명의 제주인 기록이 확인되고 이들은 일본 9개 현(?)에 소재한 약 40개 작업장에 투입됐다.

가장 많이 투입된 지역은 효고(兵庫)현으로 269명이 투입됐다. 그 중 하리마조선소(播磨造船所)는 약 230명으로 가장 많은 제주인이 투입된 작업장이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동원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각 작업장에서 약 36개에 이르는 다양한 직종으로 노역에 투입됐다.

한편 강제동원 실태조사보고서는 “군속이 사망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런 점으로만 볼 때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의 특징은 주로 노동력 동원에 있었다는 추정을 할 수 있고 군인보다는 군속들이 보다 전선(戰線) 가까이에 투입됐다는 추정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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