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군 제1훈련소 제주도 이전 전 대구에서 창설
해병대 3, 4기 신병교육 제주 육군 제1훈련소 창설 이전...제주주정공장 제주 제5훈련소서 진행
육군 제1훈련소 제주 창설 및 운영 제주사회 많은 변화 야기...토지 강제수용, 땔감 및 식량 제공며, 돌 문화 유적 유실, 식수난 제기 등 많은 피해 사례도

편집자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신병을 훈련해 6.25전쟁터로 보내진 육군 제1훈련소가 제주 대정읍 일대에서 5년간 신병훈련 등 기초 군사훈련을 통해 50만 명의 군병력을 6.25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우고 대한민국을 지킨 뜻깊은 역사가 서린 곳이다. 이에 지난해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제주 육군 제1훈련소 구술조사 결과를 일부 발췌해 3회에 걸쳐 연재 한다. 또한 구술조사를 통해 현재 살아있는 6.25참전용사들의 구술채록도 소개한다.

제주 육군 제1훈련소 구술조사(연구기관 제주다문화교육.복지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육군 제1훈련소는 제주도로 이전 하기전 대구에서 창설됐다.

이승만 정부는 1950년 7월 11일 대구에 제25교육연대를 창설했지만 7월 12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명칭을 개칭했다. 또한 동년 8월 14일 육군 본부 직할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됐고 동년 8월 26일 제 1, 2, 3, 5, 6, 7, 8, 9교육대가 편성을 완료하게 됐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대구 육군 제1훈련소보다는 최남단인 제주도가 보다 안전하게 신병을 훈련시킬 수 있고 제주도에는 일제강점기 때 알뜨르비행장 인근에 군사시설들이 존재하고 있어 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로 육군 제1훈련소 이전을 감행하게 된다.

또한 1951년 1월 14일 정부는 대구 육군 제1훈련소, 부산 육군 제3훈련소 그리고 제주 육군 제5훈련소의 통합을 추진하게 되며 동년 동월 21일에 대구 및 부산 훈련소가 제주로 이동을 해 제주 대정읍 상모리에 한국 육군 제1훈련소를 창설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부분 군인 적령기의 제주도 청년은 제주 육군 제1훈련소가 창설하기 이전에 군 입대가 이루어졌다.

또한 해병대 3기와 4기에 대한 신병교육은 제주 육군 제1훈련소가 창설하기 이전인 제주 제5훈련소에서 진행됐다. 이는 제주 육군 제1훈련소의 부대시설을 이용해 훈련을 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 16일 제주주정공장 위치에 육군 제5훈련소(대령 김병휘)를 설치해 신병을 양성하고 있었다. 1950년 8월 3일 중·고생으로 조직된 학도 돌격대가 결성돼 훈련소에 입소했다.

이들과 더불어 제주출신 청년 약 3천 명이 동년 동월에 해병 3·4기로 지원 입대해 훈련을 받게 된다. 이들은 짧은 훈련 기간만을 거치고 6·25 동란에 참여하게 됐고 1950년 9월에는 해병대가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돼 서울 탈환에 나섰고, 동년 9월 27일 중앙청에 태극기가 나부끼게 됐다.

한편 제주 육군 제1훈련소는 훈련장 범위, 훈련장 수, 훈련병과 교관의 수 등 훈련소의 규모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신병교육 훈련장이었다.

제주 육군 제1훈련소는 논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신병교육의 역할이 이전되기 전까지 5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약 50만 명의 신병을 훈련시켜서 전쟁터로 보내졌고,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의 육군과 전쟁의 역사 그리고 제주도에서 유일한 6·25 관련 육군 최초의 훈련소라는 점에서 제주 육군 제1훈련소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으며, 제주도를 넘어 한국 전역에 이르는 근대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고 연구 관계자는 밝혔다.

육군 제1훈련소의 제주 창설 및 운영은 제주도 사회에 많은 변화를 야기하게 됐다는 것.

제주민의 토지가 강제 수용됐고, 땔감 및 식량을 제공해야 했으며, 돌 문화 유적이 유실되기도 했다.

당시 대정면 지역 식수난을 제기되는 등 많은 피해 사례도 나타났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부의 축적을 양상하기도 했지만 부정부패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제주 육군 제1훈련소는 제주도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51년에 창설되어 제주도에 존재했던 육군 제1훈련소에 대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은 단 3곳에 불과하다.

육군 제1훈련소 교수관(제410호), 강병대교회(제38호), 육군 제98병원(제680호)다.

그리고 대정지역에는 제주 육군 제1훈련소가 운영되고 있는 시기에 미군 고문단이 존재해 육군 제1훈련소에 다양한 지원을 했다.

중공군 포로수용소가 존재했으며, 반공을 둘러싼 많은 사건을 발생시켰고 그리고 제5공군 군사고문 단원들이 주둔했다. 이때부터 K-40 비행장으로도 알려지고 있었다.

또한 1951년 2월 1일부터 동년 7월 21일까지 공군사관학교가 위치하고 있어서 3개월 동안 사관생도 1천 73명을 교육했다.

관계자는 “2020년은 6·25 발발 70주년이며, 한국 최초이며 최대 규모로 창설된 제주 육군 제1훈련소는 문화재 활용 가치의 가능성이 높은 장소”이라며 “우선 한국군 전적지로 제주도 초·중·고 학생들에게 한국전쟁의 실상을 교육할 수 있는 장소이다. 당시 신병들이 훈련을 받았던 장소(모슬포지역 혹은 숙영지 지역)에서 체험 활동을 하며 또한 제주도민의 피해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더 나아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신병 훈련소였다는 점에서 세계 평화의 섬으로 제주도는 세계 관광지로서 그리고 세계평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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